우리는 유한하고 일회적인 삶, 한 번뿐인 인생을 산다. 그러나 인생을 두 번 살아낼 수는 없지만 시행착오(施行錯誤)를 줄일 방법은 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을 놓치지 않고 삶에서 길을 잃었을 때 따라갈 북두칠성(北斗七星)과 같은 삶의 나침반 인생청사진이 필요하다.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변화시키는 용기를,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그리고 그 둘의 차이를 알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1. 변화의 용기
우리는 많은 상황에서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한다. 그러나 오히려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 손 안에 있는 요소들이다. 내면의 성장을 위해 조금씩이라도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 용기는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게 해 주는 중요한 추진력이다.
변화의 용기는 우리가 직접 통제할 수 있는 작은 것들에서 시작된다. 삶의 여러 상황에서 우리는 외부 환경이나 타인의 반응처럼 우리 손에 닿지 않는 것을 변화시키고자 할 때가 많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자신의 내면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힘이다.
이 작은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불확실성 속에서도 한 걸음씩 내딛는 용기가 필요하다. 때로는 큰 변화보다는 일상의 작은 습관을 바꾸는 것, 새로운 시각을 가지려 노력하는 것에서 내적 성장이 시작된다. 이러한 변화는 곧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며, 나아가 스스로가 원하는 삶을 설계하는 데 중요한 동력이 된다.
용기 있는 변화는 때로 실패를 동반할 수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더 단단해지고 지혜를 쌓아간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 작지만 꾸준한 시도를 통해 점진적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더욱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갈 수 있다. 결국, 변화의 용기는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가는 강력한 힘이 된다.
2. 수용의 평온함
변화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 예를 들어 자연의 섭리나 타인의 생각 등은 우리 삶에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요소들이다. 이러한 불가항력적인 부분들을 억지로 바꾸려 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평온함이 필요하다. 이 평온함은 무력감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자원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선택으로 이어진다.
수용의 평온함은 삶에서 통제할 수 없는 요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자연의 섭리나 타인의 생각과 같은 외부 요인들은 우리가 원한다고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요소들에 저항하고 억지로 변화시키려 할 때, 우리는 불필요한 스트레스와 소모를 경험하게 된다. 반면에, 수용의 평온함은 그런 불가항력적인 부분들을 담담하게 받아들임으로써 내면의 평온을 찾는 길이다.
이 평온함은 결코 무력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진정으로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을 얻게 한다. 즉, 에너지를 잘못된 곳에 낭비하는 대신, 변화할 수 있는 부분에 지혜롭게 쓰는 선택으로 이어진다. 불변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자포자기와는 다르다. 이는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이 지닌 자원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현명한 수용의 자세이다.
이러한 평온함은 내면의 안정감을 키워주며,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현실의 조건을 수용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가는 데 필요한 힘을 키우고 싶은가?
3. 지혜
변화시킬 수 있는 것과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을 구별하는 지혜는, 많은 시행착오와 인생 경험에서 비롯된다. 이를 위해 자기 성찰과 명확한 가치관이 필요하다. 삶에서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작은 실패들에서 교훈을 얻으며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인생의 큰 목표와 방향을 잃지 않도록 돕는 길잡이가 된다.
지혜는 변화의 가능성을 구별하고 이에 맞는 행동을 선택하는 능력이다. 이는 단순한 지식이나 정보의 축적이 아닌, 수많은 경험과 깊은 성찰을 통해 얻어지는 삶의 통찰력이다. 무엇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무엇을 수용해야 하는지를 알아차리는 이 지혜는, 삶을 더욱 평온하고 의미 있게 만들어 준다.
이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자기 성찰과 명확한 가치관이 필수적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가치와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그것을 명확히 하고 가꾸어 나가는 일은 쉬운 과정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소중한 것은 우리의 실패 경험들이다. 작은 실패들이 쌓여 갈 때마다 우리는 자신에게 더 의미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게 되며, 시행착오 속에서 자신만의 삶의 방향을 더욱 분명하게 찾아간다.
지혜는 인생의 큰 목표와 방향을 잃지 않도록 돕는 길잡이가 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일시적인 유혹이나 사소한 방해에 흔들리지 않으며, 더 나아가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중심을 지킬 수 있다. 결국, 지혜는 우리의 삶을 더욱 충만하게 만들어 주는 내면의 힘이자 나침반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요소를 통해 우리는 시행착오를 줄이고, 더욱 의미 있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여정 속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가치와 신념을 잃지 않는 것이다. 삶의 나침반이 되어 줄 이 원칙들은 인생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줄 것이다.
새벽이 나를 반긴다. 새로운 하루가 다가오면 산의 가장자리 쪽 하늘이 서서히 맑아지기 시작한다. 빛 뒤로 길게 나 있는 옅은 구름은 유색을 띤다. 단 한 순간의 사랑과 행복을 위하여 햇살 가득한 아침에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산책하는 기쁨을 위하여 과연 삶이 주는 모든 고통을 감내할 가치가 있는가? 있다! 내 눈이 항상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고, 흠잡을 데 없는 그 아름다움을 칭찬하고, 그토록 멋지고 완벽한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어야 한다.
새벽이 열리는 순간의 아름다움은 마치 삶이 주는 선물과 같다. 어두운 밤이 지나고 나면 언덕 너머로 솟아오르는 빛이 모든 것을 환하게 밝혀주듯, 우리도 새롭게 다가오는 하루 속에서 작은 기쁨과 사랑을 찾을 수 있다. 산책하며 마주하는 신선한 공기와 따뜻한 햇살 속에서 느끼는 행복은 단 한순간일지라도 우리의 가슴 깊숙이 스며들어 삶의 의미를 더해 준다.
삶의 고통과 시련은 때로는 무겁고 벗어나기 어려운 짐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바로 그 고통이 있기에 순간의 아름다움이 더욱 빛난다. 고통이 없다면 작은 행복은 쉽게 잊히고, 평범한 일상 속 기쁨의 소중함도 놓치게 될 것이다. 삶의 무게 속에서 더욱 가치 있는 사랑과 기쁨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은 감내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내 눈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고 이를 칭찬하며, 그 찬란한 순간들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인생은 충분히 아름답고, 가치 있는 여정이다. 결국,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는 그러한 의미를 새기기 위한 축복이 아닌가?
조화의 철학과 창조의 원칙은 사랑, 우정, 용기, 아름다움, 경이의 예술, 친절, 지혜 등 인생에서 중요한 모든 것들에 대해 과거 사람들이 내놓은 생각의 역사이다. 모든 앎과 생각을 낱낱이 성찰하고 분석하는 방법과 그 어떤 자극도 완전히 무시하는 방법 사이의 미묘한 균형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결국 앎과 생각은 인간이 위대한 가장 큰 이유가 되는 것이다.
조화의 철학과 창조의 원칙은 인간이 삶의 본질을 탐구하고, 의미를 부여해 온 오랜 사유의 축적이다. 사랑, 우정, 용기, 아름다움, 경이로움, 친절, 지혜 이 모든 가치들은 인간이 존엄성을 유지하고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요소들이며, 이러한 가치들을 통해 사람들은 삶의 깊은 의미를 발견해 왔다.
특히 조화의 철학은 모든 앎과 생각, 감정과 경험을 균형 있게 받아들이는 방법을 추구한다. 우리는 무조건적으로 모든 자극을 수용하는 것과 완전히 차단하는 것 사이에서 스스로의 지혜와 통찰로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생각을 깊이 성찰하고 분석함으로써 우리는 앎을 더욱 명확히 할 수 있으며, 때로는 자극을 멀리하여 내면의 고요함을 유지할 필요도 있다. 이러한 균형은 우리 삶을 더욱 성숙하고 풍요롭게 만들어 주며, 궁극적으로 우리를 더 큰 인간성으로 이끈다.
앎과 생각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 더욱 큰 가능성으로 향한다. 이는 단지 지식을 쌓는 것을 넘어, 스스로와 세상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며, 나아가 사람들 간의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을 통해 완성된다. 이러한 사유의 과정이야말로 인간이 위대하고 경이로운 이유일 것이다. 우리는 지식을 통해 한계를 확장하고자 하는 원초적 동기를 탐구하는 동시에, 인간이 인식하는 세계의 한계를 철학적으로 성찰하고자 한다.
앎과 사유를 통한 성장의 중요성으로 지식을 쌓는 것만이 아니라 세상과 자신을 깊이 이해하는 과정이 인간을 더 높은 가능성으로 이끈다는 생각은 성숙한 자아 형성과 공동체의 조화를 위한 길을 시사한다. 이는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본질적으로 더 나은 존재가 되려는, 즉 '자기 초월'의 목표와 연결된다.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다. 우리는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의 벽으로 들러싸인 우물 안에 갇혀 있다. 우리로서는 그 우물 밖 세상을 전혀 상상할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자신이 가진 상상력의 경계가 아닌가? 모든 사람이 자기만의 우물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명백하다. 어떤 사람의 우물은 좁으면서도 얕고, 또 다른 사람의 우물은 넓고도 깊다. 세상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이상하고 복잡한 곳이다.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너 자신을 알라!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다"라는 유명한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언급한, 언어와 감각이 인간의 인식 범위를 제한하는 현실을 논하고 있다. 인간은 감각이라는 틀 안에서 세상을 이해하지만, 그러한 이해는 여전히 부분적이고 제한적이다. 각자가 '우물' 안에서 세계를 바라본다는 것은, 사람마다 세상에 대한 이해와 사고의 깊이, 넓이가 다르다는 뜻이다. 또한 이 우물은 단순히 개개인의 경험과 지식의 범위를 상징하며, 궁극적으로 인간이 제한된 사고 안에서 세상의 복잡성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말이나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 우리를 정의한다. 자신에 대해 알고 싶다면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보다 행동에 집중해야 한다. 성찰은 인간이 서로의 우물 너머를 이해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서로의 세계를 넓히고 상호작용을 통해 한계를 극복할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이야말로 진정으로 인간이 위대하고 경이로운 이유가 아닌가?
오늘 우리는 철학적 사고와 자아 이해에 대해 깊이 탐구할 수 있어야 한다. "행동이 우리를 정의한다"는 명제에 초점을 맞추며, 진정한 자아를 알기 위해서는 생각과 감정보다도 행동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리는 반복된 행동을 통해 형성된다"라는 윤리적 관점과도 일맥상통한다. 사람의 행동은 내면의 가치관과 성향을 직접적으로 반영하며, 스스로에 대해 이해하려는 사람에게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우리는 모든 것에 대한 지식을 얻었을 때만 자신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을 아는 것과 자신을 아는 것이 똑같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르네 데카르트
인간이 각자의 한계를 넘어 서로를 이해하는 노력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우물 안에 갇힌 개별적 시야를 확장하고, 상호작용을 통해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세상의 폭을 넓혀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개인의 성찰과 사회적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인간이 위대하고 경이로운 이유가 바로 이 ‘소통과 이해의 노력’에 있는 것이다.
르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철학적 선언은 자아 탐구의 기초가 되는 철학적 명제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단순히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완전한 자아 이해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점을 암시하며, 행동과 경험을 통해 세상과 자신을 알아가야 한다는 것이 결론이다.
따라서 인간이 세상을 알고자 하는 과정은 곧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여정이기도 하며, 이를 통해 개인은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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